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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생전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고, 생을 마감하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세상과 연결될 수 있었던 예술가들이 존재합니다. 미술사를 통틀어 유명세를 치른 예술가들 중에는 삶과 죽음이 이처럼 비극적인 경우도 많습니다. 작가의 삶이 유한한 것과 달리, 예술 작품은 작가 사후에도 오랫동안 남아있기 때문일까요? 모순이지만 예술은 이렇듯 불멸의 존재와도 같습니다. 오늘은 평생을 고독 속에서 스스로의 안을 파고들었던 미국의 은둔 미술가 헨리 다거 Henry Darger (1892- 1973)의 이야기를 통해 미스터리한 예술 이야기를 해 봅니다.

"진정한 예술은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곳, 아무도 그것에 대해 생각하거나 그 이름을 말하지 않는 곳에 있다.”라고 프랑스의 화가 장 뒤뷔페 Jean Dubuffet(1901-1985)는 말했습니다. 예술을 기대하지 않는 곳이란 어디일까요?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 지하 단칸방의 병든 사람에게서 예술이 탄생할 수 있을까요? 때로는 외로움과 고통 안에서 오히려 새로운 방식의 꽃이 피어나기도 합니다.
헨리 다거의 ‘고독의 방’
시카고의 작은 쪽방에서 생을 마친 헨리 다거의 고독한 방을 들여다봅니다. 다거는 8살에 아동보호 시설로, 이후에는 지적장애아 시설에서만 자라다가 17살부터 병원 청소부로 일했습니다. 평생 독신이었고 정신지체자로 살았으며, 주변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는 조용한 성격이었죠. 그는 7시 반이면 어김없이 교회 미사에 참석하는 평범한 미국 시민이었으며, 무려 43년 동안 낮에는 병원 청소부로 일하고, 밤에는 작품을 그렸습니다. 타인과 대화조차 하지 않고, 철저히 혼자 살았던 그가 작품을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어느 날 노환으로 조용하게 죽음을 맞이한 그의 행방을 아무도 몰랐지만, 월세가 밀려 수상하게 여긴 집주인이 그의 방문을 열어보기 전까지 그의 작품은 숨겨져 있었습니다. 집주인이 방에 남은 유품을 정리하다가 엄청난 양의 원고 뭉치와 스케치들을 발견했는데요, 손수 제본한 7권의 책, 수기로 쓴 8권의 원고 포함, 자그마치 15,145 페이지에 달하는 모험소설과 삽화는 주로 잡지나 카탈로그에서 오려낸 이미지들을 대고 베끼는 방식으로 그려졌습니다.
헨리 다거 Henry Darger(1892- 1973)가 평생을 살았던 시카고 셋방 모습
집주인 부부는 방대한 작품들을 정리해 첫 전시회를 열었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두려움과 좌절 속에서 정해진 규칙을 고수하지 않고 자유롭게 내면을 표현한 헨리 다거의 작업 방식은 많은 예술 애호가들을 매혹시켰습니다. 평생을 외로움과 싸우며 작품을 만들었지만 정작 작품이 주목받게 된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직후였으니 아이러니합니다.

이후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앞다투어 그의 작품에 러브콜을 보내게 됩니다. 2014년 파리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다거의 삽화 한 장이 무려 9억 원에 판매됩니다. 이렇게 작품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집주인 부부가 작품을 소유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문제가 두드러지게 됩니다. 현재 50명에 가까운 다거의 친인척들이 상속권을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다거가 살아생전에는 단 한 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은 사람들이었죠.
Henry Darger. Untitled (Overall flowers) (recto); Untitled (Beautiful girls sitting around with giant cactus in center) (verso). n.d. Watercolor and pencil on paper (recto and verso), 24 × 108" (61 × 274.3 cm). Gift of the artist’s estate in honor of Klaus Biesenbach. ©2017 Henry Darger/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Henry Darger. a) Untitled (Sombreros and orange canyon) b) Untitled (Two boys canoeing). (n.d.)
Henry Darger. a) Untitled (Sombreros and orange canyon) b) Untitled (Two boys canoeing). (n.d.)
다거의 작품은 얼핏 보면 장식적이고 아름다운 드로잉 작품처럼 보입니다. 투명하고 부드러운 색채, 금발의 어린 소녀들, 나무로 빼곡한 숲, 상상 속의 동물들이 가득한 환상의 동산이죠.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삽화 속 등장인물들은 발가벗겨져 나무에 묶이거나,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립니다. 목이 졸리고 교수형에 처해지는 등 무참한 고통의 장면들은 기괴하고 참혹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끔찍한 전쟁과 폭력으로 점철된 장면들이죠. 어린 소녀들에게 자행되는 학살은 다거 자신이 불행했던 시절 받은 상처를 피조물인 아이들에게 투영한 것일까요? 소녀들의 순진하지만 놀라는 표정에서 섬뜩함과 아름다움이 기묘하게 뒤섞입니다.
Henry Darger. a) The Vivian girls nuded like child slaves b) Untitled (Sacred Heart) and At second battle of Marcocino also escape from disasterous explosion during battle caused by glandelinians. (n.d.)
그의 대표작인 ‘비현실 왕국의 비비안 걸스의 이야기 혹은 어린이 노예의 반란으로 안한 글랜디코와 안젤리안 사이의 폭력적인 전쟁 이야기(The Story of the Vivian Girls, in What is known as the Realms of the Unreal, of the Glandeco-Angelinian War Storm, Caused by the Child Slave Rebellion)’는 비비안 걸스라는 일곱 자매가 글랜델리아 왕국에서 어린이를 노예로 부리는 악의 무리에 대항하여 전쟁을 벌이는 스토리입니다. 전쟁 스토리가 핵심인 이 소설에는 상세한 묘사, 등장인물의 숫자 등 그 복잡성과 구체성이 엄청납니다. 이러한 거대한 서사 작업을 하는 데에 약 30년이라는 시간을 바친 것으로 추정되고요, 소설 작업과 함께 삽화 작업 또한 동시에 이루어졌습니다.
Henry Darger. a) Untitled (Grape shaped damna fruit) b) Untitled (Vines strangling girls). n.d.
Henry Darger. Untitled (Overall flowers) (recto); Untitled (Beautiful girls sitting around with giant cactus in center) (verso). n.d.
헨리 다거는 결국 사회 속의 보통 어른이 되지 못하고, 어린아이들이 사는 비현실의 왕국에서 살다가 영원히 저 너머의 세상에 남게 되었습니다. 20세기에 가장 미스터리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다거의 삶과 예술에 관한 영화가 나오고, 헌정 음반이 발표되는 등 대중에 많은 사랑을 받은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아르 브뤼 ART BRUT’, 새로운 미술사조의 등장
헨리 다거를 대표 주자로 새로운 미술사조도 생겨납니다. 아르 브뤼 Art Brut에 대해 들어 보셨나요? 영어로는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로 번역이 되는 이 용어는 정식 교육과는 무관하게 인간의 순수한 본능에 따라 창작을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제도권 미술 밖에서 활동하는 아마추어 작가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전혀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미술이라는 의미이지요.

예술가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그 분야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전문적인 교육을 전혀 받지 않은 이들도 자신만의 감각과 재능을 가지고 유명세를 떨친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 유럽과 미국에서는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만 찾아다니는 갤러리도 많습니다. 세상과 단절된 화가들을 발굴하기 위해 정신 병동을 가장 많이 찾는다고 하죠.

아웃사이더 아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아트페어까지 생겨나게 했습니다. 1993년 뉴욕에서는 제 1회 아웃사이더 아트 페어가 열린 이후 지금까지 매년 지속되고 있습니다. 아웃사이더 아트는 제 2의 예술계를 만들면서 현대 예술의 주류와 평행 가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장의 관심이 늘어나자 최근 몇 년 동안 예술행사, 박람회, 경매 등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컬렉션의 일부가 되는 동향을 보입니다.
Jean Dubuffet in his studio, 1967, photograph by Luc Joubert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르 브뤼Art brut라는 용어는 1945년 화가 장 뒤뷔페 Jean Dubuffet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뒤뷔페는 어린이나 정신병자 또는 소박한 아마추어 미술가 등 교양이나 전통적 미술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그려진 그림이 고도로 훈련되고 의도적인 직업 화가들의 작품보다 훨씬 솔직하고 창조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일반 작가들과 달리, 정신장애 작가들은 아예 다른 방식의 예술 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것에도 비교 불가한 유니크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죠. 애초에 비슷한 화풍의 작품이 나오기도 힘든 조건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낯선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이 아닐까요? 비전문가, 정신질환자들의 작품은 예술의 가장 순수한 형태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설명되는 것들, 어떤 언어에도 속하지 않은 소수의 예술에 관심을 기울여보면 어떨까요? 주류가 비주류를, 어느 한 쪽에서 다른 한쪽을 평가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 분명한 사실은, 사회의 중심부에서 제외된 예술, 문맹의 예술, 절대 고독의 예술, 현세계의 도피처로서의 예술은 언제나 항상 존재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끝으로, 헨리 다거가 꿈꿨던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작품을 몇 점 소개합니다. 다거 특유의 화풍처럼 환상적이면서도 기묘한 매력을 가진 김지연, 김한울 작가의 작품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불안감과 공허함을 모험과 환상의 동화로 풀어낸 작품들은, 어쩐지 헨리 다거가 꿈꿨던 유토피아의 모습과도 오버랩됩니다.
김지연, 우연히 그곳에, 장지에 채색, 112x162cm, 2021
김지연, 미지의 여정, 장지에 채색, 132x162cm, 2021

우연히 그곳에

김지연

112x162cm (100호)

미지의 여정

김지연

130x162cm (100호)

김한울, 일구어진 땅, 캔버스에 아크릴, 80x117cm, 2017
김한울, 휘 휘 휘익, 캔버스에 아크릴, 61x91cm , 2017
론 M.버크먼, 메이커스 랩, 그 멋진 작품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2021, 윌북
Leisa Rundquist, The power and fluidity of girlhood in Henry Darger’s art, 2023, Routledge
Quelle Wikipedia , Bucher Gruppe, Art Brut, 2011, Books LLC, Wiki Series